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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영주> 진행 기록 - 하나의 도시, 여섯 개의 풍경

STAXX는 4월 1일부터 10일까지, 2회에 걸쳐 3박 4일 간의 워케이션 프로그램 <작업탐험대의 기록 - 누군가의 영주>를 진행했습니다.
영주라는 한 도시를 여섯 개의 시선으로 바라본 보물같은 이야기들을 들여다보세요 :)
아카이브: 작업탐험대 202504 1차, 2차
영주에 산 지 3년. 이제는 웬만한 길 쯤은 내비게이션 없이도 운전할 수 있을 만큼 익숙해졌다. 요즈음의 나에게 누군가 영주는 살기에 좀 어때? 라던지, 영주 놀러가면 뭐하고 놀아? 라고 물어보면 특별한게 있던가..? 하고 대답을 고민하게 된다. 평일엔 아침에 출근했다 저녁에 퇴근하고, 주말엔 지인들과 식사를 하거나 본가에 다녀오는 그런 루틴한 삶. 이 반복된 일상 속에서, 영주만의 매력이 무엇이었는지는 잊은 지 오래였다.
그런데 나를 보러 영주에 오는 친구들이나, STAXX 스테이에 머문 방문자들은 하나같이 영주가 너무 좋았다고, 다시 오고 싶다고 말한다. 같은 공간을 두고 왜 나와 이렇게도 다른 인상을 받았을까? 나의 영주와 내가 아닌 ‘누군가의 영주’는 어떻게 다를까? 이런 생각으로부터 워케이션 프로그램 ‘누군가의 영주’가 시작되었다.
기록을 위한 워케이션. 각자의 시각으로 본 영주를 기록하는 시간.
말만 들어보면 낭만적이지만 사실 걱정이 많았다. 다른 지역에서 제공하는 워케이션 프로그램 또는 일주일 살기 프로그램은 시간단위로 촘촘히 지역의 좋은 자원들을 참여자에게 직접 보여주기도 하던데. 우리가 기획한 워케이션 프로그램은 체크인과 체크아웃 이외엔 참여자와 함께하는 시간이 없었다. 3박 4일 내내 자유시간 뿐인 프로그램. 이렇게 느슨한 프로그램을 운영해도 될까? 이 프로그램 끝에는 과연 어떤 결과물이 남게 될까? 그런 고민이 머릿속에 남았다. 고민이 계속되었지만, 우리는 참여자의 자율성을 끝까지 지키기로 했다. 기록이라는 결과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사람들이 말 그대로 자기만의 시각과 취향, 속도로 이 지역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했고 이것을 바탕으로 한 기록이 특히나 큰 의미를 남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신, 영주에서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슬기롭게 보낼 수 있도록 가이드를 준비했다. 우선 3년간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영주 맛집 리스트를 작성했다. 맛집 리스트는 영주 살이 1년차에도 공유를 위해 작성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보다 훨씬 풍성하고 다양한 맛집들을 추천할 수 있게 된 스스로가 조금은 기특하게 느껴졌다. 그 외에도 소품샵, 드라이브/산책 코스 등을 정리하여 QR코드를 통해 확인할 수 있게 페이지를 만들었다. 이 리스트가 참여자들의 3박 4일 여정에 좋은 가이드가 되어주길 바랐다.
참여자들이 하루를 조금이라도 든든하게 시작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아침식사를 제공사항에 포함했다. 식사를 제공하겠다고 공지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침식사로 제공할만한 메뉴도 한정적이고, 운영하는 나부터도 아침식사를 꼭 챙기는 타입이 아니라 아침식사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간단하게 샌드위치와 음료를 준비하고 자율적으로 식사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 그러나 의외로, 이 아침식사 시간이 참여자에게는 꽤 중요한 시간이 되었다. 다른 참여자가 전날에 어디를 갔었는지, 그 곳에서 무엇이 인상적이었는지 묻기도 하고, 어제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스스로 터득한 꿀팁이 있다면 이를 공유하기도 했다. 대화를 바탕으로 오늘 하루의 계획을 수정하고, 추천받은 식당이나 카페를 북마크하기도 했다. STAXX 워케이션의 장점 중 하나는 확실하게 보장된 개인 공간이다. 별도 샤워실이 구비된 1인 1실의 스테이가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몰입을 위한 고립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공간에 있기보다는 STAXX 밖에서 영주를 경험하느라 3명의 참여자가 동시에 라운지나 오피스를 쓰는 일은 드문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한 교류의 시간이 아침식사 시간이었다. 단순한 아침식사를 넘어서, 서로의 시각을 엿보고 영주의 숨은 면모를 나누는 시간이 된 것이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은 마지막 날 지난 3박 4일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글을 한 편 작성했다. 참여자가 제출한 글을 읽으며 내가 잊고 있었거나 혹은, 숨어있어 알지 못했던 영주의 매력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자유롭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나는 어딘가에 나를 매어놓고 있었다. 스스로의 편협한 생각에 가두고 얕게 생각하고 있었다. 부석사와 소수서원에 관람객이 적은 것을 안타까워하고, 갇혀있는 당나귀의 안전을 걱정했다. 바로 오지 않는 버스를 원망하고 혼자만 조급해했다. (중략) 좋은 명승지는 사람들의 발길을 자석처럼 끌어당기고, 당나귀는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 속에 잘 자라고 있다. 버스는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출발하고 교통약자들의 편의를 위해 부지런히 달린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내가 앉아있는 곳이 보금자리가 되었다. 좋아하는 것을 하며 원하는 것을 기다리는 것만큼 설레는 일이 또 있을까. 소소한 행복이 어느새 나의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모든 일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 누군가의 영주 1회차 참여자 천둥벌거숭숭이, 브런치 <영주의 자부심, 소수서원을 만나다> 글 중 발췌
참여자의 글을 통해, 내가 잊고 있던 영주의 낭만과 여유가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영감과 추억이 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천둥벌거숭숭이의 말처럼, 내가 살고 있는 이 곳도 생각하기에 따라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나니,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처음 기획했던 때가 떠올랐다. ‘다른 지역에서 하고 있는 체류 프로그램처럼 우리도 관광이나 레크리에이션 시간을 추가해야하는게 아닐까?’, ‘4일동안 자유시간 뿐인 이 프로그램에 누가 오고 싶어할까?’ 이런 고민으로 한참을 머리를 싸맸다. 긴 고민끝에 알게 된 건, 우리가 프로그램을 통해 제공하고자 했던 건 자신만의 속도와 시선으로 지역을 경험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과 따뜻한 공간이었다. 누군가는 의아하게 생각할 ‘머무는 내내 자유로운 워케이션 프로그램’이지만, 우리는 개인의 시각과 속도가 보장되는 그 자유 속에서 가장 개인적인 기록이 쌓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지역을 경험하는 데 있어 <누군가의 영주>가 그랬던 것 처럼 개인의 시각과 속도가 중요하다면, 지역에서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역에 머무는 시간이 4일이건, 4주건, 4년이건, 머무는 사람의 관점에서 재미있고 아름다운 것을 발견할 때 삶은 반짝이는 순간을 맞이한다. 이 작은 깨달음은 짧았던 워케이션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도 내게 오랜 여운으로 남았다. 어쩌면 내가 찾는 ‘새로운 삶’이란 낯선 어딘가로 떠나야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시작되는 것이 아니었을까? 내가 3년째 살고 있는 곳, 매일 반복되는 나의 일상인 곳, 이 곳에서 나는 얼마든지 <아영의 영주>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나만의 속도와 시선으로 내 삶을 다시 바라볼 수 있다는 감각. 그것이 이 워케이션 프로그램이 내게 남긴 선물이었다.
벚꽃이 한창이던 4월, <누군가의 영주>는 총 6명의 사람들과 6개의 기록물을 남기고 마무리되었다. 이 다음엔 어떤 사람들이, 어떤 고유한 리듬으로 영주라는 이 지역을 경험하고 기록하게 될까? 지역의 매력은 어쩌면 한 사람 한 사람의 고유함과 다름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음 <누군가의 영주>에서 영주의 푸르른 녹음과 함께 쌓일, 저마다 다른, 누군가의 고유한 이야기가 궁금하다.